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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이, ''23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경험' 고향 목포를 위해 쏟을…

김원이, ''23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경험' 고향 목포를 위해 쏟을 것''

김원이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은 “목포의 변화를 목포의 성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여러 과제가 놓여있다. 이런 현안을 풀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신문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목포에서 23년간 국회, 청와대, 중앙·지방정부를 두루 거치며 입법과 정책의 현장에 있던 경험을 살려 고향 목포에 헌신하고 싶다"고 김원이 전)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은 밝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김원이 전)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서울신문 김 전 부시장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 전 부시장이 20대에 학생운동을 하고, 지금까지 정치권에 몸을 담은 이유다. 주어진 임무를 죽을 힘을 다해 이뤄 내는 ‘현존임명’(現存任命)의 자세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 꿈을 구현하려 한다. 김 전 부시장은▲1968년 전남 신안 출생 ▲목포 마리아회고, 성균관대 사학과 ▲박병석 의원실 비서관 ▲성북구청장 비서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 ▲김근태·천정배·기동민 국회의원 보좌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부본부장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정당 본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목포는 목포의 변화를 목포의 성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여러 과제가 놓여있다" 전라남도 목포시 전경 ⓒ기자의소리 김원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앞서, 29일 머니투데이, 오마이뉴스, 서울신문, 경향신문, 국민일보의 인터뷰에서 "목포의 변화를 목포의 성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여러 과제가 놓여있다"며 이런 현안을 풀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출마각오를 묻는 질문에는 “내년 총선 결과가 집권 후반기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변화와 혁신, 문재인 정부의 이 기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려 한다. 목포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 호남 정치의 개혁성도 복원하겠다”고 했으며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야학을 하는 등 시민운동도 했다. 천생 목포 사람이다. 그래서 목포에서 첫 도전을 하고 싶었다. 첫 도전자의 열의와 열정이 공적 영역에서 봉사로 발현될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목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전폭적이고, 성공에 대한 기대도 큰 곳이다.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선 민주당 소속의 새롭고, 젊고, 능력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저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가 알려진다면 충분히 선택받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 비쳤다. 정무부시장 역임이 “지역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되나”는 질문에는 김 전 부시장은 “정무부시장의 기본 임무는 원활한 시정 집행을 위해 시민·중앙정부·국회·청와대와 소통·협업하는 것이다. 변화와 혁신 한복판에 있는 목포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선 중앙정부와 국회, 청와대 지원이 필요하다. 정무부시장 역할을 수행하며 쌓은 국회·중앙정부·청와대 등 인적 네트워크가 목포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최근 정치는 민생·현장정치가 대세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국회의원이 많이 늘고 있다. 서울시정이 바로 시민들 문제를 해결하는 민생 현장이었고, 갈등 해결 현장이었다. 누구보다 민생·현장정치에 익숙하고, 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생각인가”라는 질문에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해경서부정비창 신설 사업이 조속히 내실 있게 진행되도록 하겠다. 2024년까지 2000여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최근 한국당이 예산 삭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중앙정부와 힘을 합쳐 필요한 예산을 반드시 확보하고 원활히 사업을 진행, 목포 지역 경제 활성화 토대를 만들겠다. 국가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로 지정된 대양산업단지와 목포신항 일대도 집중 육성하겠다. 목포신항은 서남권 신재생에너지 거점항으로, 대양산업단지는 신재생에너지 기자재와 부품 생산 거점으로 만들겠다. 원도심 근대역사지구 활성화, 해상케이블카 관광 활성화 등 목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이런 현안들을 더불어민주당, 중앙정부와 힘을 모아 조속히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차 밝혔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새롭고 젊고 유능한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도 점점 강해짐을 느끼고 있다" 김원이 전)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경향신문 김 전 부시장은 분명 '꽃길'을 내려놓고 굳이 험지인 '목포정치'로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목포를 떠났지만 실제 20대 청년시절부터 고향 목포에 살고 싶었고, 1993년~1996년까지 목포 대밭골 야학에 참여하기도 했다. 꽃길이 아닌 험지, 국회로 가는 길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목포는 국회의원 중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있고,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도 후보자들 간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 부시장은 "23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경험을가지고, 그 동안 쌓아온 인적네트워크로 고향인 목포를 위해 일 할 것이다. 목포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흐름이 점점 커지고 있는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새롭고 젊고 유능한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도 점점 강해짐을 느끼고 있다"며 여론의 흐름을 강조했다.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주막을 ‘연통제’로 ''독립운동가 김순이 선생''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주막을 ‘연통제’로 ''독립운동가 김순이 선생''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헌병은 즉결심판권이 있었다. 태형같은 형벌은 법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수감기록이나 형무소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음에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현재 서훈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가보훈처 법령에는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서훈이 지정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로 인해 뚜렷한 공적에 해당하는 수감기록 혹은 당시 신문 및 기타 매체에 언급이 되어야 그 증거자료로 서훈 자격요건이 해당한다. 현재 횡성군에서는 김순이 여사에 대하여 공동묘지에서 묘소를 이장하여 갑천면에 있는 한치 저수지 건너편 양지바른 곳에 모셔다 두었다. 군민들이 힘을 합쳐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선양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전국 산재묘소를 돌아다니며 지켜본 것은 이곳 횡성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묘소 관리가 매우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중앙정부와 도에서는 예산과 정책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이 군과 읍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묘소를 이장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전국에 있는 이런 산재묘소에 속하는 군과 읍에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또한, 독립운동의 다양한 방략 중에서 주막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의 거점 및 피신처의 기능을 제공한 점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살 일이라 판단된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천하다고 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 기생, 백정, 노비, 주모,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옆에는 숨겨진 조력자들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그들 혼자서 거사를 진행할 수도 없으며, 그들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그 조력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왜 도왔는지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1919년 3.1 만세운동과 횡성지역에서 발생한 4.1만세운동 당시 김순이 선생은 41세였다. (1878년 10월 15일생 ) 그렇다면 1900년 초와 1913부터 1918까지 발발한 1차세계대전 당시 김순이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궁금함에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독립운동에 그렇게까지 가담했던 인물이라면 의병들이 구국운동을 펼치던 시절 선생의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의병’은 아니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최근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의병으로 활동했던 주모 한 명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엇이 당연하냐면 임시정부 요원들과 비밀리에 회동을 나눈 비밀거점은 가장 최하층,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국밥집, 설렁탕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훗날 그 장소를 ‘연통제’라고 불렀다. 김순이 선생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운영하던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횡성지역의 ‘연통제’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그 시대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독립운동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주변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자신의 주변 사람들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불문율이었다. 더욱이 당시 노비, 기생, 백정, 주모와 같은 사회적 위치가 낮은 자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더더욱 기록으로 보존되기 어려웠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며,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말하고 있다. 3.1운동이 1919년에 발생했고 광복이 194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당시 전체 인구수를 고려해본다면 아주 특별한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4명, 5명 중 1명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몸부림이었고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김순이 선생은 남편 박영화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박치욱, 딸 박덕원을 낳았다. 오랜 시간 아들에 대한 행방만 기록되었기에 후손이 단절되었다고 기록들은 전했지만, 박순업 횡성문화원장님이 오랜 시간 수소문 끝에 친딸이 있었고 13살에 시집을 가 현재 외 증손자분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횡성읍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의 중간 경계지점에서 조금 횡성 쪽에 위치한 곳에 주막이 운영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현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자그마한 텃밭이 존재하는 이곳이 바로 횡성지역의 ‘연통제’였다는 생각이들자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분이 독립운동가로 서훈만 받을 수 있었어도, 혹은 방송매체를 통해 세상에 조금만 더 알려졌어도 과연 생가와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장소가 이렇게 방치되고 심지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는 최소한의 표지판도 없이 내버려 질지 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생전 선생을 직접 본 마을 유지분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주 기골이 장대했어요. 딱 봐도 덩치도 크고 무서웠어요. 저 할머니 무서운 할머니다. 옛날에 일본 순사도 밀쳐냈던 사람이다. 그런 말들이 많았어요. 당시 일본 순사들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주막을 운영하며 벌은 돈으로 김순이 선생은 공명단 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최양옥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독립자금 모금에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3.1운동 당시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의 모의장소로 제공했고, 4월 1일 횡성 장날 독립만세사건때 일경에 쫓겨 주막에 숨어 든 동지들을 규합하여 진두지휘하다 투옥(수감기록이없음, 목격자분들이 투옥이라고 표현한 점을 고려해보면 일경에 끌려갔으나 재판이 이루어지지않고 헌병 특권인 즉결심판권으로 태형과 같은 고문형을 받고 풀려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횡성 3.1운동을 성취시킨 여성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1952년 12월 19일 남북전쟁당시 생을 마감하셨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지정이 되어있지않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군과 읍에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의연금을 모아 갑천면 구방2리 공동묘지 산32에 봉분도 없이 흔적만 남아있는 곳에 묻혀있던 선생의 묘소를 이장해 애국지사 묘비를 세웠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 횡성지역 군수는 ”주민들에 애국의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황소아줌마 동상을 건립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숨겨진 후손,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이 이 분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혀있던 선생의 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단절되어 후손이 없다는 말에 포기하지 않고 실태조사를 했던 사람들, 후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생전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그들의 기억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의소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국민들게 알리는, 이것 뿐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필진 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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