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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란시인의 '들꽃처럼'

전경란시인의 '들꽃처럼'

문학작품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존재다. 작가의 상상력, 실제 경험, 통찰력이 담겨 있는 거울은 독자의 가슴을 틔워주고 새로운 안목을 만들어 예리한 판단을 하게 한다. 잘 닦여진 거울 속을 통과한 정제된 언어들은 세상에 그윽한 울림을 주고 작가의 맑고 투명한 마음을 전해준다.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 언어로 골조를 세우고 언어로 벽들을 쌓아 언어의 집들을 만드는 과정이 한편으로 고단하기도 하지만, 완성 이후 가슴 적시는 격렬한 감동은 자기만족이라는 전리품이다. 시는 바로 이런 가장 환상적인 언어들의 놀이터요 축제의 마당이다. 아무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향기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바위 틈새 살며시 조그마한 얼굴 보일까봐 숨어 숨어서 피어나는 들꽃처럼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뽐내지도 않는 그 모습 그대로 살며시 피었다 살며시 저버린 겸손함으로 남몰래 울고 웃는 들꽃처럼 작은 틈새 때론, 널브러진 들판 짓밟히고 꺾이는 아픔 그래도 의연히 고개 숙이지 않는 모습 진한 향기 오감을 뒤흔드는 들꽃처럼 그렇게 그렇게 -전경란,「들꽃처럼」전문(《자화상》, 사의재, 2018) ⓒ목포문인협회회장 전경란 추상미술에 적용되는 미니멀리즘이란 용어가 있다. 최소한의 크기, 최소한의 재료, 최소한의 표현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말한다. 이에 비해 시는 주제 설정 후 풍부한 어휘가 요구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단단한 의지와 절제력을 바탕으로 심플함을 추구한다. 고도의 압축과 상징, 수사적 기교는 기본이다. 시인은 압축된 언어로 최대의 감동을 안겨주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는 남다른 집중력을 가진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량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시는 혼란한 정신세계를 고요하게 잠재우고 인간들에게 지성과 품성을 확립시켜 주는 생명의 언어들을 품고 있다. 시는 영혼의 감성이 풍부한 시절에 읽으면 감동이 더 깊다. 동트는 바다 위 달뜬 해류들이 태평양 향해 길 떠날 채비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듯, 시는 출렁이는 우리네 삶의 대양 속에서도 조타수 역할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나아감으로써 인생을 더욱 보람되고 풍요롭게 한다. ⓒ전경란 목포문인협회회장 취임식 전경란의 시 “들꽃처럼”은 바위 틈새에 숨어 피며 보이지 않는 향기를 발산한다. 또 널브러진 들판에서 때로는 진한 향기로 때로는 수수한 모습으로 겸손하게 웃으며 오감을 뒤흔든다. 짓밟히는 아픔에도 의연히 대처하며 풍기는 들꽃의 향기는 외롭고 소외된 자들을 상징하고 있지만, 어쩌면 풍랑 거센 인생 항해 과정에서 웃음 잃지 않는 시인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갈매기처럼 나는 책갈피를 넘기며 만나게 되는 그녀의 시집 『자화상』에 출연한 “들꽃처럼”, 수수하고 화사한 언어들은 인생 험한 골짜기에서 우리들 손을 힘껏 잡아줄 것이다. 시평 [용창선 시인,문학박사]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회, 율격동인. 목포문화원 강사. 논문 및 저서 : 『문학과 교양』(1998), 『고산 윤선도시가와 보길도 시원연구』(2003), 「윤선도의 한시 연구」(2004), 『윤선도 한시의 역주와 해설』(2015). 「보길도 윤선도문학관 스토리텔링」(2015). 시집 : 세한도를 읽다( 2019)

이종숙시인의 '선창의 밤은 발효한다'

이종숙시인의 '선창의 밤은 발효한다'

선창의 밤은 발효한다 염기 절인 공기가 후끈하게 달려드는 나무나루/바람은 휘파리 골목 늙은 여자 가랑이를 펄럭거리고/어둠 속을 스멀스멀 돌아다니다가 마침내/홍어 골목 입구에서 드러눕고 만다/오장육부를 쥐어짜며 찰지게 들러붙는 발효/선창은 화끈하게 쫙 피는 개양귀비 같은 대담함은 없다/홍어 냄새처럼 들큰하고 끈적끈적하니/뻘에 발이 스렁스렁 빠지듯/등 딴 생선이 여름 햇살에 꾸덕꾸덕 마르듯/건들건들 느리게 발효 될 뿐이다/선창엔 사랑도 격렬하지 않다/오는지 모르게 오고 /가는지 모르게 가는/나무나루 파도 같이/발효되어 스며있는 사랑이다/바람의 손길 같은 사랑이다/밤이 조단조단 깊어가며/가진 것 없는 말들 더욱더 가난해져도/용머리 돌아오는 바람이 다순구미 품으로 파고들면/맘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있던 눈물도 자근자근 발효되는/그런 선창이다(이종숙시인) 영산강은 하류에 와서야 남도의 삶들을 침식 시켜 놓고 목포에서 육지를 떼어내어 섬들을 펼쳐 놓는다. 이 리아스식 해안의 바닥에 바다와 땅을 받드는 갯벌이 있다. 삶들이 으깨지고 뭉개져서 가루지다 못해 살 속을 파고드는 입자가 되어 갯벌 같다면 억지스런 표현일까. ▲이종숙시인 전남목포출신 2003년 계간 시와사람으로등단 저서 길 위에서 꾸는 꿈 바닷물에 갯벌은 녹지 않으면서 녹듯 섞여 있다. 남도 사람들의 삶 속에 세월이 스며들어 있듯이 그렇게. 섬들은 먼 바다에서 오는 태풍을 막아주며 바닷물은 내륙보다 따뜻하고 시원하게 사람들을 살린다. 그래서 유달산에 기대어 바다의 혜택을 누렸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느리고 무표정한 땅, 어쩌면 사람들이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다처럼 고요한 곳청호라고 불리던 바다가 호수 같이 파도를 일으키지 못하고 머무는 항구,목포다. 항구의 다른 말은 선창이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 그 곳에서 만나고, 이별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삶이 윤회를 하는 곳, 그래서 선창을 끼고 있는 목포는 아픔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파고들어 더 오래 아프다. 시는 말한다. 목포의 겉모습이 아닌 깊은 속을 봐 달라고, 역사 속에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적벽 앞에 서듯 머무는 곳이다. 이젠 우리도 살아내야겠다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는 이곳을 차라리 사랑하는 일이 생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며, 무뚝뚝해져 버리는 사람들 앞에 선창의 젓갈처럼 발효되기를 홍어의 삭힌 맛이 가슴까지 뻥 뚫어 주기를 기도처럼 바라며 두 편의 시를 읽는다. 이제는 위정자의 세월보다 위민자의 역사로 쓰여 질 땅이길 그리하여 백년이 넘는 세월이 남긴 흔적으로도 희망을 일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전남 목포전경 목포 사람 무뚝뚝하고 말씨가 거칠다고 속까지 그런 줄 아셨오?/갯바람 맞으며 쪽발이 군발이 시대 거치고/정치 바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가난하고 배고파 보시오/ 어디 그렇게 부드럽고 살랑거려지는가 그래도 속은 상추 속잎보다 여려서 눈물 많고 웃음 많으니/맛난 것 한 보시기만 있어도 앞집 뒷집 옆집 나누고‘/손맛은 또 얼매나 좋은지/목포 사람이 조몰락거려서 맛없는 것이 없지라 입으로 하는 친절이 어디 친절이다요/사기꾼치고 부드럽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 없고/정치하는 사람치고/가짜 친절이 넘치지 않은 사람 없습디다 그랑께 부디 겉 보지 말고/투박한 속의 변치 않는 따뜻한 친절을 보시고/자주 자주 목포로 오싯쇼/경치 좋고 맛난 것 많은 이런 데가 어디 있겄소/알았재라우?(이종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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