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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태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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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태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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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나는 오늘 이토의 정수리를 노린다"

 

원태우 지사 1905년은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이다.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조약 체결을 한 후 5일후인 22일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수원에서 사냥을 한 후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오후 6시15분께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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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항일운동에 불타던 한 열혈 청년이 알게됐다. 그는 1882년 3월 4일 안양시 안양1동 642에서 태어나 당시 23세이던 원태우 지사로 그는 당시 동네 청년들과 함께 현재의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인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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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일행중 한명이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 지사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지자 유리창이 박살나며 여덟개의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히는 자상을 입혔고 이토의 일행은 놀라서 상처를 응급처치하는 등 한 시간 이상 열차가 멈춰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원 지사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속도를 줄이며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해야만 하였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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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 지사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안양역의 철도 노무자로 있던 야마사키의 제보에 의하여 일본 헌병들에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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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료들은 거사를 결행 시 두려움으로 현장을 이탈하여 무혐의로 석방되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킨 원태우 의사만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 의사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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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에 원 지사는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 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들의 악의적인 고문으로 인하여 평생 고통에 시달렸으며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만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의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지난 1990년 8월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태우 지사의 기록은 대한매일신보와 김윤식의 <속음청사>,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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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후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뒤늦게 한 한국인에 의하여 일본에서 발견되어 원태우 지사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으며 나머지는 안양시청 별관 민원실 현관 한쪽에 전시돼 있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자리에는 의거지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참고자료: <진홍빛 별자국, 원태우: 기자의소리 글/사이채, 삽화:임한영, 안양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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