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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법판결 승북 ''세월호 유가족께 사과드린다''

무소속 이정현의원 ⓒ뉴스1 이정현 무소속 의원은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에 개입한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최종 결정에 조건 없이 승복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여전히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가 됐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고 마음이 무겁다. 사과드린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날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 의원은 한국방송공사(KBS)가 정부와 해경의 대처를 비판하는 내용을 보도하자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몰아간다' '10일 후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하라'고 편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의원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이나 정치 무대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개진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해 불필요한 정쟁을 초래할까 우려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었고, 사실과 어긋난 진실을 밝히자는 것과 재난 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데 몰두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다툴 여지가 없지 않아 3심까지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방송편성 독립 침해혐의로 32년 만에 처음 처벌받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관련 법 조항에 모호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다툼 여지가 있었고, 보완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저의 경우가 참고가 돼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기자의소리
  • 2020년 01월 16일

한국당 김재원 ''경찰이 주민 음주단속 말고 대리운전해줘야''

자유한국당 김재원의원 ⓒ연합뉴스 김재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이 경찰이 주민들 음주 단속을 할 것이 아니라 대리운전을 해줘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경북 의성에서 열린 의정 보고회에 참석한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XX 파출소 지어주게 됐는데 마찬가지로 경찰관이 요구를 많이 해서 파출소를 지어주는데…"라며 "주민들 음주운전 대리운전도 해주고 경찰관들이 그래야 되는데 음주 단속이나 하고 이러면 안 되지 않냐. 경찰관들이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고회에 참석한 일부 주민들은 김 정책위의장 발언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해 김 정책위의장은 "농촌엔 대리운전 업체가 없어서 경찰이 주민을 태워주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만 하면 주민들이 힘드니 더 잘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지난 2018년에는 의성군수가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때 검찰에 연락해 봐주게 했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 시민객원기자 박나현 기자의소리
  • 2020년 01월 16일

이국종 외상센터 왜 떠났나?···아주대의료원 원장 욕설파문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 ⓒMBC 이국종 아주대 권역 외상센터장이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녹취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이 센터장이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태평양에서 진행되는 해군 훈련에 참여한 이유가 유 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MBC MBC는 13일 이 센터장과 유 의료원장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유 원장이 이 센터장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라고 소리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이 센터장은 다운된 목소리로 "아닙니다. 그런 거"라고 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닥터헬기 도입을 요구하며 소신 발언을 이어온 이 센터장은 경기도의 지원으로 닥터헬기 운항이 본격화되면서 병원 윗선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장은 출국 전 취재진과 만나 "보건복지부하고 경기도에서 국정감사까지 하고 그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최고 단계까지 보고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헬기를 새로 사달라고 한 적도 없다"며 "아무거나 날아다니면 되는데, 그냥 너무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저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다고 하더라"라며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국을 아예 떠나버릴 고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외상센터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일단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해군 훈련에 참여 중이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20년 01월 15일

문대통령 신년기자회, 조국에 ''마음의 빚졌다''…윤석열에 ''개혁 앞장서길''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고 말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겐 “검찰이 조직문화·수사관행을 고쳐나가는 일까지 윤 총장이 앞장서준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신뢰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조국이 어떤 사람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과 검찰개혁 조정안의 통과에 이르기까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기여가 굉장히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그 분의 유무죄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저는 아주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국민 분열 사태와 관련해선 “조 전 장관의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갈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해선 신뢰하고 있다는 입장을 굳혔다. ‘아직도 윤 총장을 신뢰하고 있느냐’, ‘지난 6개월 간의 윤 총장의 직무수행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라는 등의 질문에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은 엄정한 수사, 권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 면에선 이미 국민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검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란 점을 좀 더 인식하면서 검찰이 비판받고 있는 조직문화·수사관행을 고쳐나가는 일까지 윤 총장이 앞장서준다면 국민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신뢰를 받으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부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뿐만 아니라 검경수사권조정이라는 제도적 개혁작업이 끝났지만 여전히 검찰이 중요 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경찰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영장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며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수처에서 판·검사에 대한 기소권을 갖게 됐지만 나머지 기소권은 여전히 검찰 손에 있다.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의 기소독점 상태 속에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검찰개혁, 이 부분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은 검찰 스스로 우리가 주체라는 그런 인식을 가져줘야만 가능하고 검찰총장이 가장 앞장서 줘야만 수사관행뿐만 아니라 조직문화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20년 01월 14일

''정치하는엄마들이 해냈다''… ‘유치원 3법’ 통과 이끈 평범한 여성들의 힘

‘정치하는엄마들’이 2019년 3월 5일 서울 용산구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앞에서 ‘한유총의 불법 집단행동 검찰고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린이가 한유총의 개학 연기 투쟁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어린이집 급·간식비 기준액 인상 개정에 대한 환영 논평을 발표했다. 2020년 3월부터 적용되는 어린이집 급·간식비 최저기준은 만 0~2세 1745원 → 1900원, 만 3~5세 2000원 → 2500원으로 인상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8일 논평을 통해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정치하는엄마들이 해냈다!”고 환영했다. 이들은 논평을 통해 “이번 인상으로 어린이집 재원 아동들에게 전달되는 급·간식비 예산 증가분은 최소 1천억 원에 달한다. ‘2019년도 보육사업안내’의 내용을 보면 누리과정(만 3~5세) 급·간식비 기준 2000원은 노력조항에 불과해 국공립을 제외한 보육현장에서는 누리과정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1745원을 적용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점을 반영하면 예산 증가분은 약 1350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3월 베이비뉴스 ‘1745원 어린이집 식판전쟁’ 기획보도를 통해 어린이집 급·간식비 최저기준이 1745원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캠페인에 돌입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정보공개청구로 전수조사 한 결과,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별 급·간식비 지원금은 0원에서 1190원까지 천차만별이고, 지원금이 0원인 지자체는 전체의 약 3분의 1인 81곳에 달했다. ◇ 정치하는엄마들, 지난 1년간 전수조사·기자회견·기습시위 등 활동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2018년 5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조정실과 인천교육청을 상대로 비리 유치원과 비리 어린이집의 명단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또한 전국 300여 공공기관 내 직장어린이집 급·간식비 현황을 전수조사 결과, 최하가 3000원선이고 ▲보건복지부 어린이집 3862원 ▲청와대 어린이집 3800원 ▲국회 어린이집 3800원 ▲서울시청 어린이집 6391원 등으로 조사됐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5월 2일 광화문광장 기자회견 ‘어린이날 외식 말고 급식을 선물하자’, 7월 29일, 국회 앞 기자회견 ‘아이들은 배고프다! 국회는 차별 없는 급식 보장하라’, 9월 6일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기습시위, 12월 10일 국회 앞 기자회견 ‘급식차별 방치한 정부-국회는 사죄하라!’ 등으로 아이들이 처한 급식차별과 '식판 양극화'의 현실을 세상에 알려왔다. 또 2020년 예산안 국회 통과를 앞두고, 급식팀뿐 아니라 정치하는엄마들 회원 1800여 명이 정기국회 기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및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전화·문자메시지로 급·간식비 예산 증액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환영 논평을 통해 “당사자 정치를 통해 값진 유산을 아이들에게 남기게 됐다”고 자평했다. 이어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인상된 급·간식비가 고스란히 아이들 식판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2015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운영 중인 ‘부모 모니터링단’은 방문일정을 사전에 협의하기 때문에 실효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서, “양육자와 지역 주민이 상시 직접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급식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해 어린이집은 물론 유치원까지 의무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끝으로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번에 인상된 급·간식비 기준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라며, "정치하는엄마들은 급간식비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제고하고 2021년도 최저기준 인상까지 변함없이 행동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번 주 중으로 2020년도 지자체별 급·간식비 지원금 현황을 정보공개청구 할 예정이다.

  • 기자의소리 나서현기자
  • 2020년 01월 14일

기자네

'이정현' 대법판결 승북 ''세월호 유가족께 사과드린다''

  • 기자의소리
  • 2020년 01월 16일

한국당 김재원 ''경찰이 주민 음주단속 말고 대리운전해줘야''

  • 시민객원기자 박나현 기자의소리
  • 2020년 01월 16일

이국종 외상센터 왜 떠났나?···아주대의료원 원장 욕설파문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20년 01월 15일

소리네

단식 8일째 쓰러진 황교안, 그의 얼굴 엔 수염이 없었다.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 ⓒMBC 이국종 아주대 권역 외상센터장이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녹취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이 센터장이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태평양에서 진행되는 해군 훈련에 참여한 이유가 유 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MBC MBC는 13일 이 센터장과 유 의료원장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유 원장이 이 센터장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라고 소리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이 센터장은 다운된 목소리로 "아닙니다. 그런 거"라고 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닥터헬기 도입을 요구하며 소신 발언을 이어온 이 센터장은 경기도의 지원으로 닥터헬기 운항이 본격화되면서 병원 윗선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장은 출국 전 취재진과 만나 "보건복지부하고 경기도에서 국정감사까지 하고 그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최고 단계까지 보고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헬기를 새로 사달라고 한 적도 없다"며 "아무거나 날아다니면 되는데, 그냥 너무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저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다고 하더라"라며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국을 아예 떠나버릴 고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외상센터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일단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해군 훈련에 참여 중이다.

  • 아이엠피터 임병도
  • 2019년 11월 29일

최순실 '나는 비선실세아니다' '박근혜 불러달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 ⓒMBC 이국종 아주대 권역 외상센터장이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녹취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이 센터장이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태평양에서 진행되는 해군 훈련에 참여한 이유가 유 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MBC MBC는 13일 이 센터장과 유 의료원장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유 원장이 이 센터장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라고 소리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이 센터장은 다운된 목소리로 "아닙니다. 그런 거"라고 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닥터헬기 도입을 요구하며 소신 발언을 이어온 이 센터장은 경기도의 지원으로 닥터헬기 운항이 본격화되면서 병원 윗선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장은 출국 전 취재진과 만나 "보건복지부하고 경기도에서 국정감사까지 하고 그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최고 단계까지 보고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헬기를 새로 사달라고 한 적도 없다"며 "아무거나 날아다니면 되는데, 그냥 너무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저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다고 하더라"라며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국을 아예 떠나버릴 고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외상센터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일단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해군 훈련에 참여 중이다.

  • 시민객원기자 기자의소리 황지현
  • 2019년 10월 30일

표창원 ''좀비한테 물린 것 같은 느낌''... ''국민소환제로 끌어내려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 ⓒMBC 이국종 아주대 권역 외상센터장이 유희석 아주대의료원 원장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녹취가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근 이 센터장이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태평양에서 진행되는 해군 훈련에 참여한 이유가 유 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MBC MBC는 13일 이 센터장과 유 의료원장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유 원장이 이 센터장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라고 소리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이 센터장은 다운된 목소리로 "아닙니다. 그런 거"라고 답했다. 보도에 따르면 닥터헬기 도입을 요구하며 소신 발언을 이어온 이 센터장은 경기도의 지원으로 닥터헬기 운항이 본격화되면서 병원 윗선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장은 출국 전 취재진과 만나 "보건복지부하고 경기도에서 국정감사까지 하고 그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최고 단계까지 보고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헬기를 새로 사달라고 한 적도 없다"며 "아무거나 날아다니면 되는데, 그냥 너무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어 "병원에서는 저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다고 하더라"라며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이 센터장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국을 아예 떠나버릴 고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외상센터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일단 2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 해군 훈련에 참여 중이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19년 10월 28일

기획

목포 총선 출마 '김원이' 전 서울시 부시장, '박지원 대항마되나?'

  • 신안신문/폭로닷컴 강윤옥 대표기자
  • 2019년 12월 06일

김원이, ''23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경험' 고향 목포를 위해 쏟을 것''

  • 송주현 기자의소리센터장
  • 2019년 12월 03일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주막을 ‘연통제’로 ''독립운동가 김순이 선생''

  • 기자의소리 이선진기자
  • 2019년 09월 27일

문화공감

전경란시인의 '들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헌병은 즉결심판권이 있었다. 태형같은 형벌은 법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감기록이나 형무소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음에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현재 서훈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가보훈처 법령에는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서훈이 지정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로 인해 뚜렷한 공적에 해당하는 수감기록 혹은 당시 신문 및 기타 매체에 언급이 되어야 그 증거자료로 서훈 자격요건이 해당한다. 현재 횡성군에서는 김순이 여사에 대하여 공동묘지에서 묘소를 이장하여 갑천면에 있는 한치 저수지 건너편 양지바른 곳에 모셔다 두었다. 군민들이 힘을 합쳐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선양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전국 산재묘소를 돌아다니며 지켜본 것은 이곳 횡성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묘소 관리가 매우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중앙정부와 도에서는 예산과 정책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이 군과 읍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묘소를 이장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전국에 있는 이런 산재묘소에 속하는 군과 읍에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또한, 독립운동의 다양한 방략 중에서 주막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의 거점 및 피신처의 기능을 제공한 점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살 일이라 판단된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천하다고 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 기생, 백정, 노비, 주모,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옆에는 숨겨진 조력자들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그들 혼자서 거사를 진행할 수도 없으며, 그들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그 조력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왜 도왔는지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1919년 3.1 만세운동과 횡성지역에서 발생한 4.1만세운동 당시 김순이 선생은 41세였다. (1878년 10월 15일생 ) 그렇다면 1900년 초와 1913부터 1918까지 발발한 1차세계대전 당시 김순이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궁금함에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독립운동에 그렇게까지 가담했던 인물이라면 의병들이 구국운동을 펼치던 시절 선생의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의병’은 아니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최근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의병으로 활동했던 주모 한 명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엇이 당연하냐면 임시정부 요원들과 비밀리에 회동을 나눈 비밀거점은 가장 최하층,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국밥집, 설렁탕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훗날 그 장소를 ‘연통제’라고 불렀다. 김순이 선생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운영하던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횡성지역의 ‘연통제’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그 시대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독립운동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주변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자신의 주변 사람들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불문율이었다. 더욱이 당시 노비, 기생, 백정, 주모와 같은 사회적 위치가 낮은 자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더더욱 기록으로 보존되기 어려웠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며,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말하고 있다. 3.1운동이 1919년에 발생했고 광복이 194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당시 전체 인구수를 고려해본다면 아주 특별한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4명, 5명 중 1명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몸부림이었고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김순이 선생은 남편 박영화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박치욱, 딸 박덕원을 낳았다. 오랜 시간 아들에 대한 행방만 기록되었기에 후손이 단절되었다고 기록들은 전했지만, 박순업 횡성문화원장님이 오랜 시간 수소문 끝에 친딸이 있었고 13살에 시집을 가 현재 외 증손자분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횡성읍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의 중간 경계지점에서 조금 횡성 쪽에 위치한 곳에 주막이 운영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현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자그마한 텃밭이 존재하는 이곳이 바로 횡성지역의 ‘연통제’였다는 생각이들자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분이 독립운동가로 서훈만 받을 수 있었어도, 혹은 방송매체를 통해 세상에 조금만 더 알려졌어도 과연 생가와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장소가 이렇게 방치되고 심지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는 최소한의 표지판도 없이 내버려 질지 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생전 선생을 직접 본 마을 유지분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주 기골이 장대했어요. 딱 봐도 덩치도 크고 무서웠어요. 저 할머니 무서운 할머니다. 옛날에 일본 순사도 밀쳐냈던 사람이다. 그런 말들이 많았어요. 당시 일본 순사들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주막을 운영하며 벌은 돈으로 김순이 선생은 공명단 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최양옥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독립자금 모금에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3.1운동 당시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의 모의장소로 제공했고, 4월 1일 횡성 장날 독립만세사건때 일경에 쫓겨 주막에 숨어 든 동지들을 규합하여 진두지휘하다 투옥(수감기록이없음, 목격자분들이 투옥이라고 표현한 점을 고려해보면 일경에 끌려갔으나 재판이 이루어지지않고 헌병 특권인 즉결심판권으로 태형과 같은 고문형을 받고 풀려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횡성 3.1운동을 성취시킨 여성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1952년 12월 19일 남북전쟁당시 생을 마감하셨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지정이 되어있지않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군과 읍에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의연금을 모아 갑천면 구방2리 공동묘지 산32에 봉분도 없이 흔적만 남아있는 곳에 묻혀있던 선생의 묘소를 이장해 애국지사 묘비를 세웠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 횡성지역 군수는 ”주민들에 애국의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황소아줌마 동상을 건립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숨겨진 후손,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이 이 분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혀있던 선생의 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단절되어 후손이 없다는 말에 포기하지 않고 실태조사를 했던 사람들, 후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생전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그들의 기억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의소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국민들게 알리는, 이것 뿐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필진 정상규]

  • [글]용창선, 서울신문 등단시인
  • 2019년 08월 18일

이종숙시인의 '선창의 밤은 발효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헌병은 즉결심판권이 있었다. 태형같은 형벌은 법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감기록이나 형무소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음에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현재 서훈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가보훈처 법령에는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서훈이 지정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로 인해 뚜렷한 공적에 해당하는 수감기록 혹은 당시 신문 및 기타 매체에 언급이 되어야 그 증거자료로 서훈 자격요건이 해당한다. 현재 횡성군에서는 김순이 여사에 대하여 공동묘지에서 묘소를 이장하여 갑천면에 있는 한치 저수지 건너편 양지바른 곳에 모셔다 두었다. 군민들이 힘을 합쳐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선양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전국 산재묘소를 돌아다니며 지켜본 것은 이곳 횡성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묘소 관리가 매우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중앙정부와 도에서는 예산과 정책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이 군과 읍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묘소를 이장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전국에 있는 이런 산재묘소에 속하는 군과 읍에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또한, 독립운동의 다양한 방략 중에서 주막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의 거점 및 피신처의 기능을 제공한 점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살 일이라 판단된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천하다고 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 기생, 백정, 노비, 주모,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옆에는 숨겨진 조력자들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그들 혼자서 거사를 진행할 수도 없으며, 그들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그 조력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왜 도왔는지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1919년 3.1 만세운동과 횡성지역에서 발생한 4.1만세운동 당시 김순이 선생은 41세였다. (1878년 10월 15일생 ) 그렇다면 1900년 초와 1913부터 1918까지 발발한 1차세계대전 당시 김순이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궁금함에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독립운동에 그렇게까지 가담했던 인물이라면 의병들이 구국운동을 펼치던 시절 선생의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의병’은 아니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최근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의병으로 활동했던 주모 한 명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엇이 당연하냐면 임시정부 요원들과 비밀리에 회동을 나눈 비밀거점은 가장 최하층,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국밥집, 설렁탕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훗날 그 장소를 ‘연통제’라고 불렀다. 김순이 선생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운영하던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횡성지역의 ‘연통제’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그 시대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독립운동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주변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자신의 주변 사람들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불문율이었다. 더욱이 당시 노비, 기생, 백정, 주모와 같은 사회적 위치가 낮은 자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더더욱 기록으로 보존되기 어려웠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며,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말하고 있다. 3.1운동이 1919년에 발생했고 광복이 194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당시 전체 인구수를 고려해본다면 아주 특별한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4명, 5명 중 1명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몸부림이었고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김순이 선생은 남편 박영화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박치욱, 딸 박덕원을 낳았다. 오랜 시간 아들에 대한 행방만 기록되었기에 후손이 단절되었다고 기록들은 전했지만, 박순업 횡성문화원장님이 오랜 시간 수소문 끝에 친딸이 있었고 13살에 시집을 가 현재 외 증손자분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횡성읍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의 중간 경계지점에서 조금 횡성 쪽에 위치한 곳에 주막이 운영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현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자그마한 텃밭이 존재하는 이곳이 바로 횡성지역의 ‘연통제’였다는 생각이들자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분이 독립운동가로 서훈만 받을 수 있었어도, 혹은 방송매체를 통해 세상에 조금만 더 알려졌어도 과연 생가와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장소가 이렇게 방치되고 심지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는 최소한의 표지판도 없이 내버려 질지 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생전 선생을 직접 본 마을 유지분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주 기골이 장대했어요. 딱 봐도 덩치도 크고 무서웠어요. 저 할머니 무서운 할머니다. 옛날에 일본 순사도 밀쳐냈던 사람이다. 그런 말들이 많았어요. 당시 일본 순사들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주막을 운영하며 벌은 돈으로 김순이 선생은 공명단 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최양옥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독립자금 모금에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3.1운동 당시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의 모의장소로 제공했고, 4월 1일 횡성 장날 독립만세사건때 일경에 쫓겨 주막에 숨어 든 동지들을 규합하여 진두지휘하다 투옥(수감기록이없음, 목격자분들이 투옥이라고 표현한 점을 고려해보면 일경에 끌려갔으나 재판이 이루어지지않고 헌병 특권인 즉결심판권으로 태형과 같은 고문형을 받고 풀려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횡성 3.1운동을 성취시킨 여성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1952년 12월 19일 남북전쟁당시 생을 마감하셨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지정이 되어있지않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군과 읍에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의연금을 모아 갑천면 구방2리 공동묘지 산32에 봉분도 없이 흔적만 남아있는 곳에 묻혀있던 선생의 묘소를 이장해 애국지사 묘비를 세웠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 횡성지역 군수는 ”주민들에 애국의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황소아줌마 동상을 건립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숨겨진 후손,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이 이 분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혀있던 선생의 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단절되어 후손이 없다는 말에 포기하지 않고 실태조사를 했던 사람들, 후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생전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그들의 기억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의소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국민들게 알리는, 이것 뿐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필진 정상규]

  • 글:김정선시인
  • 2019년 07월 01일

김혜경시인의 '지금은 2003년'의 시를 읊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헌병은 즉결심판권이 있었다. 태형같은 형벌은 법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감기록이나 형무소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부분 때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음에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현재 서훈을 받지 못하는 예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가보훈처 법령에는 뚜렷한 공적이 있어야 서훈이 지정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로 인해 뚜렷한 공적에 해당하는 수감기록 혹은 당시 신문 및 기타 매체에 언급이 되어야 그 증거자료로 서훈 자격요건이 해당한다. 현재 횡성군에서는 김순이 여사에 대하여 공동묘지에서 묘소를 이장하여 갑천면에 있는 한치 저수지 건너편 양지바른 곳에 모셔다 두었다. 군민들이 힘을 합쳐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선양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전국 산재묘소를 돌아다니며 지켜본 것은 이곳 횡성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묘소 관리가 매우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중앙정부와 도에서는 예산과 정책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이 군과 읍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묘소를 이장하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전국에 있는 이런 산재묘소에 속하는 군과 읍에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또한, 독립운동의 다양한 방략 중에서 주막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의 거점 및 피신처의 기능을 제공한 점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살 일이라 판단된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천하다고 할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한 기생, 백정, 노비, 주모,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독립운동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옆에는 숨겨진 조력자들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당연히 그들 혼자서 거사를 진행할 수도 없으며, 그들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그 조력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왜 도왔는지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1919년 3.1 만세운동과 횡성지역에서 발생한 4.1만세운동 당시 김순이 선생은 41세였다. (1878년 10월 15일생 ) 그렇다면 1900년 초와 1913부터 1918까지 발발한 1차세계대전 당시 김순이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이 궁금함에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독립운동에 그렇게까지 가담했던 인물이라면 의병들이 구국운동을 펼치던 시절 선생의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의병’은 아니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최근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의병으로 활동했던 주모 한 명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무엇이 당연하냐면 임시정부 요원들과 비밀리에 회동을 나눈 비밀거점은 가장 최하층,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국밥집, 설렁탕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훗날 그 장소를 ‘연통제’라고 불렀다. 김순이 선생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운영하던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횡성지역의 ‘연통제’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그 시대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독립운동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주변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자신의 주변 사람들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불문율이었다. 더욱이 당시 노비, 기생, 백정, 주모와 같은 사회적 위치가 낮은 자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더더욱 기록으로 보존되기 어려웠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1 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이며, 7,509명이 사망, 15,850명이 부상, 45,306명이 체포되었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소였다고 말하고 있다. 3.1운동이 1919년에 발생했고 광복이 194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당시 전체 인구수를 고려해본다면 아주 특별한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4명, 5명 중 1명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몸부림이었고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김순이 선생은 남편 박영화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박치욱, 딸 박덕원을 낳았다. 오랜 시간 아들에 대한 행방만 기록되었기에 후손이 단절되었다고 기록들은 전했지만, 박순업 횡성문화원장님이 오랜 시간 수소문 끝에 친딸이 있었고 13살에 시집을 가 현재 외 증손자분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횡성읍 옥동리와 갑천면 구방리의 중간 경계지점에서 조금 횡성 쪽에 위치한 곳에 주막이 운영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현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자그마한 텃밭이 존재하는 이곳이 바로 횡성지역의 ‘연통제’였다는 생각이들자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분이 독립운동가로 서훈만 받을 수 있었어도, 혹은 방송매체를 통해 세상에 조금만 더 알려졌어도 과연 생가와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장소가 이렇게 방치되고 심지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는 최소한의 표지판도 없이 내버려 질지 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생전 선생을 직접 본 마을 유지분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주 기골이 장대했어요. 딱 봐도 덩치도 크고 무서웠어요. 저 할머니 무서운 할머니다. 옛날에 일본 순사도 밀쳐냈던 사람이다. 그런 말들이 많았어요. 당시 일본 순사들은 정말 무서웠거든요. 주막을 운영하며 벌은 돈으로 김순이 선생은 공명단 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최양옥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독립자금 모금에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3.1운동 당시 주막을 독립운동가들의 모의장소로 제공했고, 4월 1일 횡성 장날 독립만세사건때 일경에 쫓겨 주막에 숨어 든 동지들을 규합하여 진두지휘하다 투옥(수감기록이없음, 목격자분들이 투옥이라고 표현한 점을 고려해보면 일경에 끌려갔으나 재판이 이루어지지않고 헌병 특권인 즉결심판권으로 태형과 같은 고문형을 받고 풀려난 것으로 추정)되는 등 횡성 3.1운동을 성취시킨 여성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1952년 12월 19일 남북전쟁당시 생을 마감하셨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지정이 되어있지않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군과 읍에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의연금을 모아 갑천면 구방2리 공동묘지 산32에 봉분도 없이 흔적만 남아있는 곳에 묻혀있던 선생의 묘소를 이장해 애국지사 묘비를 세웠다.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 횡성지역 군수는 ”주민들에 애국의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황소아줌마 동상을 건립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숨겨진 후손,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이 이 분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공동묘지에 이름 없이 묻혀있던 선생의 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단절되어 후손이 없다는 말에 포기하지 않고 실태조사를 했던 사람들, 후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 생전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그들의 기억을 책으로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의소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국민들게 알리는, 이것 뿐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필진 정상규]

  • 글 김정선시인
  • 2019년 0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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