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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급식비 인상' 문자에…한국당 김재원 '계속하면 삭감한다'

자유한국당 김재원의원 ⓒ국민일보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어린이집 급식비 인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문자메시지에 "계속하면 더 삭감하겠다" 내용의 답장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해당 문자를 보낸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 의원에게 이날 어린이집 급·간식비 인상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예결위에서 내년도 예산 심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어린이집 급·간식비 인상을 위한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4일 한 학부모의 문자에 “스팸 넣지 마세요. 계속하면 더 삭감하겠습니다”라고 답장했다. 이 학부모가 “스팸 아닌데요. 유권자로서 문자행동 하는 건데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라고 반문하자, 김 의원은 다시 “넣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다른 학부모에게도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이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복수의 언론을 통해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어린이집 급식비는 2009년부터 1일 1745원에 머물러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이를 인상해달라는 취지로 이날 예결위 의원들에게 단체 문자·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이들은 “예결위 의원 15명 중 이런 답변을 보낸 것은 김 의원이 유일하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 측은 MBC와의 통화에서 “문자가 수백통 가까이 와서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예산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자를 계속 보내시니 그만 보내시라는 의미로 답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 시민객원기자 박나현 기자의소리
  • 2019년 12월 05일

윤석열 검찰과 `결전의 날` 눈앞 ‘추미애 법무부장관 내정’

추미애의원 ⓒ연합뉴스 검찰이 대통령비서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바로 다음 날인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여권과 검찰의 `전면전` 국면에서 법무부 장관 `원포인트 개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오늘(5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이른바 `추다르크`라는 별칭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5선 추미애 의원을 임명,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추미애 ‘개혁 성향이 강한 5선 의원’ ⓒ뉴스핌 판사 출신인 추 의원은 개혁 성향이 강한 5선 의원으로, 민주당에서는 검찰개혁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추 의원을 청와대에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 내정자는 문 대통령이 낙선했던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중앙선거대책위 국민통합위원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표로 있으면서 당 중앙선대위 상임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문 대통령 당선 공신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추 내정자는 대구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광주고법과 춘천·인천·전주지법 판사를 지냈다. 이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권에 입문, 당 부대변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6년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16·18·19·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인 2016년 당 대표에 올라 이듬해 대선을 총지휘했다. ‘문 대통령의 중단없는 검찰개혁, 강도 높은 드라이브 예고’ ⓒ연합뉴스 청와대가 이른바 `추다르크`라는 별칭을 가진 추 의원을 통해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또 개혁 성향으로 정치적 중량감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추 내정자 기용은 문 대통령이 중단없는 검찰개혁을 선언한 상황에서 더욱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조국 파동`은 물론이고 최근 하명 수사 및 감찰 무마 의혹으로 청와대와 검찰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국정운영 동력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검찰에 대한 견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중이 담겨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내에서는 최근의 청와대-검찰 갈등 논란의 배경에는 `개혁에 대한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는 인식이 번져 있다. 아울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경 수사권 조정 등 핵심 개혁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칫 이대로 검찰개혁이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여권 내에서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청와대 및 여당과 호흡을 맞추며 검찰개혁을 뚝심있게 밀고나갈 개혁적 인사가 필요하고 추 의원이 이에 적임자라는 것이 문 대통령의 판단인 셈이다. 이에 따라 추 내정자에게는 검찰개혁 완수라는 중책이 부여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에 대한 감찰권과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정의당 ‘이번 법무부 장관 후보는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 ⓒ뉴시스 정의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명한 데 대해 "율사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두루 거친 경륜을 가진 후보라는 점에서 법무부 장관 역할을 잘 수행하리라 예상된다"고 밝혔다. 오현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현재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 검찰개혁 법안을 앞에 두고 검찰은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러한 비상한 시기에 원만한 지휘력을 발휘하면서도 개혁의 소임을 다할 법무부 장관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무부 장관 후보는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며 "향후 정의당은 추미애 후보의 개혁성을 철저히 검증해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19년 12월 05일

류여해, 나경원 '남 쳐낼 땐 좋았겠지'...'삭발하라고 그리 조언했건만'

류여해 ⓒ페이스북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어제(4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삭발하라는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아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류 전 위원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경원, 권력은 그저 꽃송이 같아서 필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며 “남 쳐낼 땐 좋았겠지. 머리 깎는 것도 몸 사리더니. 깎았으면 진정한 야당 원내대표가 되었을 텐데. 삭발해야 살 수 있다고 내가 그리도 조언했건만”이라고 비판했다. 류 전 위원은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오늘 내가 깎는다. 더 이상 삭발은 없다’고 말해야 블랙홀 삭발 릴레이를 멈출 수 있다”며 삭발을 종용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부적절하다”며 거절했다. 한편,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불신임’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의총에서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국당 총선 승리를 위한 그 어떤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시민객원기자 강현아 기자의소리
  • 2019년 12월 05일

나경원 연임 무산 ''황교안이 막았다''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연합뉴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연임이 무산됐다.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이달 10일까지다. 재신임여부에 대해 나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소집하려하자,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나 원내대표는 3일 의원총회에서 당헌·당규를 거론하며 “임기 연장이 안 되면 원내대표 선거를 하는 게 맞다. 내일 오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임기 연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본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이지만 국회의원 잔여 임기가 6개월 이내로 남았을 때는 의원총회 추인으로 연장할 수 있다. 의원들이 동의하면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 29일까지로 늘어난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들에게 임기 연장을 결정할 의원총회를 소집한다며 문자까지 보냈다. 그런데 채 몇 시간도 안 돼 당 지도부로부터 거부 통지서가 날아왔다. 황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청와대 앞 투쟁 천막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두 시간가량 논의한 끝에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박완수 사무총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원내대표 임기 연장 여부에 대한 최고위 심의가 있었다”며 “원내대표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비공개 최고위에 참석, 의총을 소집해 임기 연장 여부를 묻겠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최고위원은 “원칙대로 한 것이다. 원내대표 임기 1년이 끝났고, 경선에 나서겠다는 의원이 있기 때문에 임기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원내대표에 나서겠다는 의원이 없다면 연장을 논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도 “원칙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는 원내대표 임기 연장이 최고위 의결이 필요한 안건으로 판단했다. 당헌·당규상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되지만 선거 공고권은 당대표에게 있기 때문이다. 당대표가 선거 공고를 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가 열릴 수 없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당대표가 선거 공고를 하면 재신임 여부를 따지지 않고 바로 선거를 해야 한다. 나 원내대표는 지도부 동의 없이 섣불리 의원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가 이를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 기자의소리 나서현기자
  • 2019년 12월 03일

'부글부글' 靑, 윤석열 향해 '별건수사-피의사실공표' 경고

고민정대변인 ⓒ연합뉴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오늘 오후 브리핑에서 "검찰은 12월 1일부터 피의사실과 수사상황 공개를 금지하는 형사사건 공개준칙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을 명심해달라"고 경고했다. 여권과 검찰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청와대가 검찰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고 대변인은 "(A검찰수사관) 유서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거짓으로 흘리고 단지 청와대에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에 대해 의문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간 물밑으로 흘러나오는 검찰발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져왔지만 공식 대응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검찰을 `개혁 방해 세력`으로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섰다. 특히 `백원우 별동대`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 법무부 특별감찰을 촉구했다. 조사를 앞둔 청와대 특감반원 출신 검찰 소속 A수사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 검찰의 강압·별건 수사가 있었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여권에서 A수사관 사망 원인으로 강압수사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한 검찰 중간간부는 "A수사관의 안타까운 소식을 오히려 여당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이용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특별감찰을 요구하는 것은 "수사 독립성 침해"라는 반발도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특감반원 출신 A수사관 사망 사건 여파로 이번 주 예정돼 있던 오·만찬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는 절차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19년 12월 03일

기자네

엄마들 '급식비 인상' 문자에…한국당 김재원 '계속하면 삭감한다'

  • 시민객원기자 박나현 기자의소리
  • 2019년 12월 05일

윤석열 검찰과 `결전의 날` 눈앞 ‘추미애 법무부장관 내정’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19년 12월 05일

류여해, 나경원 '남 쳐낼 땐 좋았겠지'...'삭발하라고 그리 조언했건만'

  • 시민객원기자 강현아 기자의소리
  • 2019년 12월 05일

소리네

단식 8일째 쓰러진 황교안, 그의 얼굴 엔 수염이 없었다.

류여해 ⓒ페이스북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어제(4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삭발하라는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아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류 전 위원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경원, 권력은 그저 꽃송이 같아서 필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며 “남 쳐낼 땐 좋았겠지. 머리 깎는 것도 몸 사리더니. 깎았으면 진정한 야당 원내대표가 되었을 텐데. 삭발해야 살 수 있다고 내가 그리도 조언했건만”이라고 비판했다. 류 전 위원은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오늘 내가 깎는다. 더 이상 삭발은 없다’고 말해야 블랙홀 삭발 릴레이를 멈출 수 있다”며 삭발을 종용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부적절하다”며 거절했다. 한편,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불신임’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의총에서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국당 총선 승리를 위한 그 어떤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아이엠피터 임병도
  • 2019년 11월 29일

최순실 '나는 비선실세아니다' '박근혜 불러달라'

류여해 ⓒ페이스북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어제(4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삭발하라는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아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류 전 위원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경원, 권력은 그저 꽃송이 같아서 필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며 “남 쳐낼 땐 좋았겠지. 머리 깎는 것도 몸 사리더니. 깎았으면 진정한 야당 원내대표가 되었을 텐데. 삭발해야 살 수 있다고 내가 그리도 조언했건만”이라고 비판했다. 류 전 위원은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오늘 내가 깎는다. 더 이상 삭발은 없다’고 말해야 블랙홀 삭발 릴레이를 멈출 수 있다”며 삭발을 종용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부적절하다”며 거절했다. 한편,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불신임’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의총에서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국당 총선 승리를 위한 그 어떤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시민객원기자 기자의소리 황지현
  • 2019년 10월 30일

표창원 ''좀비한테 물린 것 같은 느낌''... ''국민소환제로 끌어내려야''

류여해 ⓒ페이스북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어제(4일) 나경원 원내대표를 향해 “삭발하라는 자신의 조언을 듣지 않아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류 전 위원은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경원, 권력은 그저 꽃송이 같아서 필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며 “남 쳐낼 땐 좋았겠지. 머리 깎는 것도 몸 사리더니. 깎았으면 진정한 야당 원내대표가 되었을 텐데. 삭발해야 살 수 있다고 내가 그리도 조언했건만”이라고 비판했다. 류 전 위원은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나서서 ‘오늘 내가 깎는다. 더 이상 삭발은 없다’고 말해야 블랙홀 삭발 릴레이를 멈출 수 있다”며 삭발을 종용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부적절하다”며 거절했다. 한편, 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불신임’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의총에서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국당 총선 승리를 위한 그 어떤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기자의소리 김형선기자
  • 2019년 10월 28일

기획

김원이, ''23년간 '입법과 정책 현장의 경험' 고향 목포를 위해 쏟을 것''

  • 송주현 기자의소리센터장
  • 2019년 12월 03일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주막을 ‘연통제’로 ''독립운동가 김순이 선생''

  • 기자의소리 이선진기자
  • 2019년 09월 27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태우지사

  • 기자의소리
  • 2019년 09월 18일

문화공감

전경란시인의 '들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나는 오늘 이토의 정수리를 노린다" 원태우 지사 1905년은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이다.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조약 체결을 한 후 5일후인 22일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수원에서 사냥을 한 후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오후 6시15분께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항일운동에 불타던 한 열혈 청년이 알게됐다. 그는 1882년 3월 4일 안양시 안양1동 642에서 태어나 당시 23세이던 원태우 지사로 그는 당시 동네 청년들과 함께 현재의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인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일행중 한명이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 지사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지자 유리창이 박살나며 여덟개의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히는 자상을 입혔고 이토의 일행은 놀라서 상처를 응급처치하는 등 한 시간 이상 열차가 멈춰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원 지사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속도를 줄이며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해야만 하였다는 곳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 지사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안양역의 철도 노무자로 있던 야마사키의 제보에 의하여 일본 헌병들에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후 동료들은 거사를 결행 시 두려움으로 현장을 이탈하여 무혐의로 석방되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킨 원태우 의사만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 의사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에 원 지사는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 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들의 악의적인 고문으로 인하여 평생 고통에 시달렸으며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만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의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지난 1990년 8월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태우 지사의 기록은 대한매일신보와 김윤식의 <속음청사>,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후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뒤늦게 한 한국인에 의하여 일본에서 발견되어 원태우 지사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으며 나머지는 안양시청 별관 민원실 현관 한쪽에 전시돼 있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자리에는 의거지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참고자료: <진홍빛 별자국, 원태우: 기자의소리 글/사이채, 삽화:임한영, 안양시민신문>

  • [글]용창선, 서울신문 등단시인
  • 2019년 08월 18일

이종숙시인의 '선창의 밤은 발효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나는 오늘 이토의 정수리를 노린다" 원태우 지사 1905년은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이다.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조약 체결을 한 후 5일후인 22일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수원에서 사냥을 한 후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오후 6시15분께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항일운동에 불타던 한 열혈 청년이 알게됐다. 그는 1882년 3월 4일 안양시 안양1동 642에서 태어나 당시 23세이던 원태우 지사로 그는 당시 동네 청년들과 함께 현재의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인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일행중 한명이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 지사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지자 유리창이 박살나며 여덟개의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히는 자상을 입혔고 이토의 일행은 놀라서 상처를 응급처치하는 등 한 시간 이상 열차가 멈춰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원 지사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속도를 줄이며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해야만 하였다는 곳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 지사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안양역의 철도 노무자로 있던 야마사키의 제보에 의하여 일본 헌병들에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후 동료들은 거사를 결행 시 두려움으로 현장을 이탈하여 무혐의로 석방되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킨 원태우 의사만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 의사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에 원 지사는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 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들의 악의적인 고문으로 인하여 평생 고통에 시달렸으며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만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의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지난 1990년 8월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태우 지사의 기록은 대한매일신보와 김윤식의 <속음청사>,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후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뒤늦게 한 한국인에 의하여 일본에서 발견되어 원태우 지사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으며 나머지는 안양시청 별관 민원실 현관 한쪽에 전시돼 있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자리에는 의거지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참고자료: <진홍빛 별자국, 원태우: 기자의소리 글/사이채, 삽화:임한영, 안양시민신문>

  • 글:김정선시인
  • 2019년 07월 01일

김혜경시인의 '지금은 2003년'의 시를 읊으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나는 오늘 이토의 정수리를 노린다" 원태우 지사 1905년은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이다.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조약 체결을 한 후 5일후인 22일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수원에서 사냥을 한 후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오후 6시15분께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항일운동에 불타던 한 열혈 청년이 알게됐다. 그는 1882년 3월 4일 안양시 안양1동 642에서 태어나 당시 23세이던 원태우 지사로 그는 당시 동네 청년들과 함께 현재의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인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일행중 한명이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 지사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지자 유리창이 박살나며 여덟개의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히는 자상을 입혔고 이토의 일행은 놀라서 상처를 응급처치하는 등 한 시간 이상 열차가 멈춰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원 지사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속도를 줄이며 넘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해야만 하였다는 곳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 지사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안양역의 철도 노무자로 있던 야마사키의 제보에 의하여 일본 헌병들에게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후 동료들은 거사를 결행 시 두려움으로 현장을 이탈하여 무혐의로 석방되고 단독으로 거사를 일으킨 원태우 의사만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 의사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에 원 지사는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 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들의 악의적인 고문으로 인하여 평생 고통에 시달렸으며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만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6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의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지난 1990년 8월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태우 지사의 기록은 대한매일신보와 김윤식의 <속음청사>,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자의소리 이후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뒤늦게 한 한국인에 의하여 일본에서 발견되어 원태우 지사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으며 나머지는 안양시청 별관 민원실 현관 한쪽에 전시돼 있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자리에는 의거지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참고자료: <진홍빛 별자국, 원태우: 기자의소리 글/사이채, 삽화:임한영, 안양시민신문>

  • 글 김정선시인
  • 2019년 0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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